지리산
1.날짜:2013.10.5(토)
2.날씨:맑은 후 차차 흐림
3.걸음구간:백무동-제석봉-천왕봉-제석봉-장터목-세석-한신계곡-백무동
4.걸음거리 및 시간:약 20km 12시간 30분
5.산행동무:혼자
가을 지리산을 작년에 갔었고 올 가을은 이제 시작이다.
가을은 짧은데 지리산을 몇번을 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리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맘이 설렌다.
블친 돌팍님과 가기로 했었다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돌팍님은 참여를 하지 못하시고 기왕 집을 나서니 여유스런 지리길을 밟고 오겠다고 다짐한다.
오후 근무를 마친 후라서 잠을 1시간 밖에 못잤다.
늘 그렇듯 홀로 달리는 고속도로는 졸림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졸림을 피하고자 남원으로 향하지 않고 황전에서 바로 구불탕 구불탕 성삼재로 올라간다.
여수발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어선지 토요일인대도 성삼재를 오르내리는 차를 단 한대도 만날 수 없었다.
외로움일까~?
홀가분한 것일까~?
백무동에 30시 30분에 도착하니 동서울에서 출발한 심야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서울 사람들은 신속하게 준비를 마친 후 암흑의 장터목골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04시에 그 뒤를 따르고... 천천히...
08시 50분 천왕봉
오랜만에 마빡에 불 밝히는 기분이 이상 야릇하다.
바글거리던 서울 산우님들은 어디쯤 가고 계실까~?
아무도 없으니 조금은 무섭다.
혹여 블친 산고파님이 심야버스로 오늘 지리산을 오신 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05시 25분 참샘 도착
05시 40분 소지봉 도착한다.
나보다 20분 정도 먼저 출발하신 서울 산우님들은 참샘에서 모조리 다 퍼진 듯 하였다.
나의 산행 스타일대로 쉼없이 거북이 걸음으로 츤츤히 오름짓을 이어간다.
간간히 불어대는 바람에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부딪히는 소리가 한편의 명곡을 듣는 듯 하였다.
06시 55분 제석봉 도착
장터목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금줄을 넘는다.
운동좀할 생각으로 금줄을 넘어 바로 제석이를 치고 오르지만 거친호흡만 토할뿐 괜히 헛고생 했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그래도 지리이기에 참아낼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반야공주의 토실토실한 궁둥이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저리 선명하지 않는가~?
온통 꽃밭인 제석이...
여름 산오리풀과 가을 구절초는 이미 시들어 없다지만 지금 남아있는 제석이의 초원은 나를 부르기에 충분하였노라...
23호 태풍 피토의 영향으로 바람은 이루말 할 수 없이 거세게 몰아치지만 지리를 휩사고 도는 아침 향기만은 너무나 황홀하다.
길게 들이마셔 입 꼭 다물고 꿀꺽 삼켜 몰아 넣고 또 몰아 넣는다.
저 아랫배까지 깊숙히 깊숙히로...
구름바다를 만들어주는 백무동과 멀리 대둔산 그리고 남덕유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서쪽으론 조계산과 화순 모후산 그리고 광주 무등산까지 조망되는 듯 하다.
왕시루봉 뒷편으로 곡성 동악산이 조망되고 주암땜과 승주땜이 운해를 만들어 놓았다.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마빡에 불 밝히고 올라선 보람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라는 생각에 스스로 황홀경에 빠진다.
오늘은 혼자이기에 더욱 편안하고 홀가분하다.
지리는 혼자인 산친구를 더 포근히 감싸주는 듯 싶다.
너무 좋으니까~?
지리 제석이에 서 있으니까~?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것 같아 제석평전에 올라서 1시간 동안이나 자연과 호흡한다.
지난 겨울날에 허리까지 빠리는 제석평전의 눈밭을 갈고 다녔던 것처럼 가을날 오늘은 제석평전의 초원을 동서남북으로 갈고 다닌다.
그러면 안돼는줄 알면서도...
서락이와는 또 다른 모습...
내사랑 육지 최고봉 지리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구상나무 사이로 촛대와 영신봉... 반야 그리고 노고까지 담아본다.
모든 사람들이 다 황홀경이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진다.
08시 18분
제석이를 내려와 천왕이로 오름짓을 시도한다.
광양 백운산과 삼신봉이 발 아래에 지척으로 느껴지니 한걸음만 옮기면 닿을 듯하다.
지금 천왕이에 올라선다.
반야 너머로 지난 봄날에 솔맨,이선수,펭귄,산여인님과 항꾸네 만복이를 점령하고 서북능선 종주길을 걸었던 기억도 스친다.
지리와 함께인 지금 이순간이 너무 좋다.
아~ 지리여~~
천왕이 오름길에 저 돌삐를 보니 솔맨님이 생각난다.
중산리
09시 천왕봉(사진 찍힌 시간)
수많은 산우님들이 천왕이에 올라서서 자신만의 입맛으로 지리를 집어 삼킨다.
08시 50분에 천왕봉에 도착하여 쉼없이 자연을 흡수한다.
오늘은 지리를 맑은 정신으로 느끼기 위하여 막걸리를 준비하지 않았다.
가끔은...
불타는 중봉과 하봉
백여명의 일출객은 이미 하산하고 지금 올라선 산우님들은 백무동 또는 중산리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여수에서 올라왔다길래 나도 모르게 눈길이...
덕유... 가야...
중봉까자 갔다가올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꾹 참았다는...
천왕이를 내려선다.
중산리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고...
09시 57분
이제 체력도 바닥을 들어낸다.
배는 꼬르륵...
아점을 먹을 시간...
여수에 살았다면 막걸리를 챙겨와서 당연히 일배하였을 터인데...
백무동에서 출발할 때 생각났던 술+산고파 이신 산고파님이 다시 생각난다.
백무동과 마천 그리고 칠선계곡...
가을이 저물기전에 돌팍님과 칠선이를 한번더 기웃겨려야하는데...
10시 21분
통천문에서 제석봉을...
10시 23분
통천문의 이정표를 붙이는중...
제석봉과 통천문에 세워진 이정표는 새로 만들어 피인트칠까지 이쁘게 칠했다.
제석봉에서 천왕이를...
23호태풍 피토의 영향 때문에 남동쪽에서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10시 52분
서쪽 라인도 서서히 구름으로 덮혀가고...
하지만 반야와 북쪽 라인은 아무렇지아니하고...
11시 22분 장터목
물,영양갱,캔커피를 챙기고...
아침엔 제석봉으로 바로 치고 올랐고 이젠 세석으로 가는길에 장터목을 지난다.
장터목 공사는 숙박시설이 아니고 발전기실을 새로 만든다고 했다.
화장실이나 개선했으면 좋으련만...
11시 33분
연하봉 오름길에서 만난 아저씨...
사진을 찍는 나를 보시며 입담이 얼마나 좋으시던지...
괜안타시며 모델해주시겠다고 웃음까지 던지신다.
산행이라는 것은 이래서 아름다움인 것이고 지치고 거칠어진 호흡을 이리 달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기도...
내가 좋아하는 길...
이곳을 지날때면 너무 아름다운 느낌이 들기에 늘~ 같은 생각이다.
11시 35분 연하봉 언저리에서 제석평전을 바라보고...
11시 37분 연하봉으로 가는길...
11시 39분
연하봉에서 천왕이로 가는길...
이길을 지날때면 늘 생각나는 저 쓰러진 천년 구상고사목...
세월에 약은 없다.
세월 앞에서 그 어떤것도 남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순간을 위해서만 숨쉬며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1년 10월 2일 모습
고사목이 엄청 무거울진데 바람이 옮긴 것인지 사람이 옮긴 것인지...
11시 45분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 하면 자살을 꿈꾸는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 반성하러 오시라~
연하선경-꽁초봉과 촛대봉
10일만 일찍 올라왔었다면 천상의 화원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을텐디...
행여 그때 왔더라면 지금처럼 단풍은 보지 못했을...
11시 57분 꽁초봉
지리 그 어느곳이든 어떤 길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리를 찾아 걸음하는 모든이가 다 그렇듯이...
12시 19분
촛대를 향하여...
12시 34분
12시 48분 촛대봉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13시 08분
여기에 너도 있고 당신도 있고 그대도 있으니 나도 여기에 있는것이 아닌가~
13시 34분
세석이를 뒤로하고 한신으로 하강한다.
한신... 반갑구나...
참 오랜만이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병문안드린 후 동서울에서 막차타고 백무동-한신으로 들어왔었는데...
칠흑같은 어둠을 뚫으며 무서운 생각을 수 없이 지워가며 으시시해 온몸을 움추리며 홀로 한신으로 빨려 들어왔던 그날...
14시 08분
아무도 없으니 저 푹포에 내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족탕으로 만족해야했었다.
14시 33분
수고하십니다~!
가파른 오름길이 힘드시지요~?
벌써 하산하시네요~?
예~
주능선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아주 이쁩니다.
아름다운 산행하십시요~!
산행중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스치지만 이리 쉽게 교감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오붓하게 산을 오르시는 두 부부의 발걸음이 아름다움으로 몰려온다.
분명 저양반들은 복받으며 살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산길에 오충폭포를 담아보고 싶었으나 미끄러워서 패스...
15시 49분 가내소 폭포
16시 30분 백무동 도착
몸이 극도로 지치고 힘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천천히를 외쳤다.
너의 등줄기에 올라 숨막히게 달리면 남는게 뭐란말인가?
새벽길 마다하지 않고 마빡에 불 밝히며 백무동을 출발했었던 내모습을 떠올려본다.
무서움에 움추리면서도 너를 찾아 나서는 길은 여전히 행복이었다.
여느 산우님들이나 다를게 없지만 오늘 너의 머리에 머물렀던 시간을 결코 헛됨이라 여기지 않는다.
너를 찾아 헤매임의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날 너를 찾아 나서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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